- OECD 38개국 중 33개국 허용하는데 한국은 '불허 5개국'... 온라인 불법유통 5년간 3,189건
경구용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의 국내 도입 논란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미프진 도입 문제를 정부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관계부처에 해결 방안 마련을 지시하면서다. 대통령은 관련 법 개정 전이라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10주 이내 초기 단계에서 중절을 유도하는 경구용 약물이다.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허용된 이후 2024년 기준 전 세계 101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바 있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곳 중 33곳이 합법적으로 사용 중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불허하는 5개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 [7년째 이어진 공백] 헌재 결정 이후 대체 입법 부재
국내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법적 공백이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프진 역시 정식 품목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 허가 신청 이력: 국내 독점 판권을 보유한 현대약품은 2021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미프지미소정'의 품목허가를 처음 신청했으나, 안전성·유효성 관련 자료 보완 요구에 따라 2022년 12월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 재신청과 중단: 2023년 재신청이 이뤄졌지만 관련 법 개정 문제로 심사가 중단됐고, 2024년 12월 세 번째로 신청한 상태로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 식약처 입장: 식약처는 이번 대통령 지시 이후에도 성평등가족부·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에 대해서는 답변이 어렵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 [불법유통 실태] 5년간 적발 3,189건, 수사 의뢰는 단 7건
정식 허가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미프진은 SNS나 중고거래 플랫폼, 텔레그램 등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임신중지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 건수는 2021년 414건, 2022년 643건, 2023년 491건, 2024년 741건, 2025년 682건이며, 2026년 들어서도 1월부터 5월까지 218건이 적발됐다. 최근 5년여간 누적 적발 건수는 총 3,189건에 달한다.
- 낮은 수사 전환율: 이 같은 대규모 적발에도 불구하고 2021년 이후 경찰 등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사례는 총 7건에 그쳤다. 판매 사이트가 해외에 있거나 판매자 특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실제 거래 실태: 한 판매 사이트에서는 임신 7주 이전은 35만원, 7~12주는 55만원에 거래되고 있었으며, 판매자가 스스로 약사라고 소개하며 나이나 수술 이력 등을 확인한 뒤 복용 상담까지 진행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 [엇갈리는 입장] 의료계 "책임 떠넘기기" vs 여성단체 "신속 도입해야"
이번 대통령 지시에 대해 의료계와 여성단체의 입장은 뚜렷하게 갈린다.
- 의료계 반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의사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미프진을 처방하게 하는 것은 의료 현장을 사법 리스크로 몰아넣는 조치라고 밝혔다.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와 바른의료연구소 역시 의사 재량 처방이 결국 책임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응급 대응 체계와 법적 보호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여성단체 입장: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식약처가 법 개정 없이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법률 자문을 받고도 그동안 도입을 미뤄왔다고 주장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역시 미프진이 개발된 지 40년 가까이 된 만큼 안전성 근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산업계 반응: 미프진 국내 판권을 보유한 현대약품 주가는 대통령 발언 이후 급등하는 등, 정책 불확실성 해소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반영되고 있다.
■ 향후 전망… "관계부처 협의와 국회 입법이 관건"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성평등가족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는 미프진 도입과 관련한 공식 협의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그동안 결론을 미뤄온 사안인 만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 차원의 도입 방안이 마련되고 국회의 후속 입법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의료 현장의 표준 진료 지침과 법적 보호 장치 마련, 그리고 여성의 접근성 보장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향후 논의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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